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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열전-사파 서태지, 정파에서 파문당하다




부제는 '한 서빠의 서태지 우상화 전기 작업' 되겠습니다;;;(진지) 목적은 중국에서 서태지학 연구하기 전
에 선수쳐보자는 것 되겠고(이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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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열전 1편 시나위-사파 서태지, 정파에서 파문당하다

서태지씨 출생부터 스쿨밴드 시절까지는 일단 넘어갑시다. 제가 개인적으로 서태지씨를 알 리도 없고-_-
그 동안 쌓인 자료들 뒤적거려가면서 간접적으로 추론을 해야 할 판에(그나마 다행인 건 서태지씨가 매우
매우매우 유명한 사람이라서 자료는 많다는 겁니다) 유명해지기 전 자료는 구할 도리도 없습니다.

그럭저럭 평범하게 지내다가 중 2때부터 산 기타때문에 음악폐인-_-이 되셔서 식음도 전폐하고 성적은
곤두박질치다가 부모님과의 갈등 끝에 음악할 것을 허락받고 여러 밴드를 전전했다-여기까지가 시나위
들어오기 전까지의 얘깁니다. 시나위는 워낙에 한국 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밴드고 서태지씨가 오버그
라운드에서 무지막지하게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꽤 오래 있었던 밴드였는지라 이 시절에 대한 자료는 상
당히 많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시나위 멤버였던 시절의 서태지가 유명했다기보다는 서태지가 뜬 이후
에 후일담으로서 그나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서 그 때의 이야기가 나온 거죠. 좀 민감한 얘깁니다만 서
태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그가 '뭔진 모르지만 대단한-_-' 시나위의 멤버였다는 경력은 잘
알려져 있어서 그가 그 시절을 이용해먹는다는 비난도 상당히 받았습니다. 흠...여기에 대해선 '우리 오
빠 때문에 시나위가 더 떴잖아' 요런 얘기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가 정식멤버였던 것도 사
실이고, 그가 이후에 락을 부정했다면 모를까... 자신의 음악적 본류가 락이라는 것을 여러번 강조하면
서(아, 물론 이 사실이 인정받는데도 몇년 걸렸습니다;) 음악으로 증명했는데...가져갈 지분 가져간 거
죠. 시나위 멤버였다는 사실이 음악적 기본바탕이라는 이미지메이킹에 도움이 됐다는 건 전혀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에...그러면 이 시나위라는 밴드가 대체 어떤 밴드죠?<-저보다 더 잘 아는 분들 많은 거 압니다 쿨럭;;;
요 밴드에 대해서 지극히 피상적인 설명은 '신대철이 이끄는 한국 정통락밴드'라는 겁니다. 좀 어이없
는 얘기지만 저 간단한 말에 거의 모든 것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_-;;;

시나위 리더 신대철씨는 한국 락의 거장 신중현씨(이분 정말 대단한 분입니다)의 첫째 아들로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기도 합니다. 83년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시나위를 결성해서 86년에 1집을 냈군요. 이
후 90년 시나위 4기가 해체될 때까지 통산 앨범 다섯장을 냈고 멤버는 수없이 교체되었습니다-_-;;;
특히 보컬리스트 교체는 앨범마다 있습니다;;; 물론 이 교체의 배경에는 리더 신대철씨와 멤버들간의
의견차이도 원인이 있었겠고, 그때마다 다른 사정이 있었겠습니다만... 당시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유가 하나 더 나옵니다.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락밴드로 살아간다는 건 너무너무너무 힘들었다는
거죠. (앨범 잘 만들고 있다가 보컬 임재범씨가 영장 나와서 군입대를 당해;버리질 않나;;;)그때마다 멤
버들의 교체는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대철씨의 인터뷰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나죠.

Q: 밴드 생활이 힘들지는 않습니까?
A: 아주 힘들어요. 매번 때려치워야겠다고 생각할 정돕니다.
Q: 근데 왜 밴드를 고집하십니까?
A: 힘드니까요.

무슨 소린지-_-;;; 저게 그때 밴드생활의 실체고, 그걸 대하는 신대철씨의 태도군요.

그래도 이 밴드를 거쳐간 멤버들 중에 이후 한국대중음악사에 쟁쟁한 인물이 꽤 많죠. 1집 보컬이었
던 임재범씨, 2집과 4집 보컬 김종서씨, H2O와 삐삐밴드 등으로 유명한 강기영, 김민기씨, 우리의-_-
서태지씨, 아...그러고 보니 5집 이후의 김바다와 정한종씨도 쟁쟁하게 활동중이죠.

여튼 88년경 새로운 라인업으로 밴드를 다시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던 신대철씨가 클럽 우드스탁에
갔다가 이중산씨 밑에서 베이스를 치고 있던 서태지를 픽업하게 되었죠. 이 때 서태지씨는 시나위
앨범에 있는 거의 모든 곡을 카피해서 칠 정도였고, 이를 눈여겨봤던 신대철씨는 이중산씨에게 "
형, 쟤 나 줘"라는 말과 함께 영입해버리게 됩니다-_-;;;(고 2 나이라는 말에 학교 안 다니냐고
물었더니 학교 그만뒀다는 대답에 얼씨구나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서태지 본인의 인터뷰에서도 이 때 시나위에 가입하게 된 것에 대해 무척이나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의 기절할 뻔 했죠. 신대철씨만 하더라도 그때 제게는 거의 신이었고, 그런
사람들 하고 얘기한다는 것만도 저에게는 큰 기쁨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니까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더라구요. 돈까지 준다고 그랬는데, 저는 돈이고 뭐고 다 필요없고 같이 활동하게만 해달라
고 했죠."

뭐랄까...이건 전형적인 팬의 자세-_-;;;

이후 정말 잦은 가입과 탈퇴를 반복했던; 보컬 김종서씨(김종서씨도 당시 서태지에겐 엄청난 우상이었으므
로 며칠동안 말도 못 걸고 바라보기만 하고, 김종서씨는 그런 서태지씨한테 긴장해서 며칠간 말도 못했다
는 후문이 있습니다;;; 뭐 말 튼 다음에는 꽤 사이가 좋게좋게 흘러왔죠)가 들어오고 드럼 오경환씨가 영입
되어서 시나위 4기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서태지는 이전 경력도 미약한 17세 소년이었
으니 꽤나 파격적인 발탁입니다.(여기에 대해서 신대철씨는 '난 어릴 때부터 이 판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
이 내 주위에 몰려서 딱 보면 누가 잘하는지 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너 잘났다-_-) 이후 콘서트와 앨
범 발매까지는 상당히 길고 지루한 텀이 있었는데 매일매일 클럽에서 하루 주구장창 연습에 연습만 거듭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똑같은 거 계속 반복하다 보니 머리카락으로 얼굴 가리고 졸면서 박자는 기가
막히게 연주했다고-_- 물론 밴드음악이고 내공을 쌓아가는 건 밴드 모두의 과제였으니 모든 멤버가 다 열
심히 했겠지만... 특히 신대철씨가 서태지씨에게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연습을 시킨 건 사실이었죠.

예전부터 이 시절에 대한 코멘트들을 읽어보면 신대철과 서태지가 과연 어떤 관계였나하는 의구심이 듭니
다. 그룹 안에서 평등한 멤버 관계는 분명히 아니었고; 대략 장인과 도제 관계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_-;;;
신대철씨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리스트로 날린 사람이었고, 서태지를 만날 무렵에는 이미 한국 대표 락밴
드이자 명반을 여러 개 낸 시나위의 리더였습니다. 이에 비해서 서태지는 거의 무명이다시피 한 소년이었
죠. 이런 애를 발탁했으니 시나위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려면 연습을 계속 시킨 건 당연한 일이겠죠. 한데
그에 더해서 서태지에 대해서 상당한 기대와 그에 반하는 묘한 징조를 감지하고 그 혹독한 훈련은 더해진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서태지를
저의 제자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음악적인 조언을 많이 했었죠."

당시 미디음악이 없다시피 한 시절에 미디음악을 도입해서 음반을 내기까지 한 신대철씨가 서태지를 낙원
상가에 데리고 다니면서 악기를 보러 다니고, 서태지가 작업할 때 옆에서 조언해 주고 작업한 음악을 들어
주기까지 했다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사람이 서태지에 대해 가지는 애착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태지가 특유의 집착과 집중력으로-_- 연습만 묵묵히 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던 듯 합니다. 문제는 서태지
가 성장하면서 그의 음악정체성을 드러내놓은 뒤인 것 같군요. 다 알다시피 이때부터 서태지는 락 음악뿐
아니라 흑인 랩음악까지 다양하게 섭렵하면서 특유의 실험정신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정통 락
을 추구했던 밴드 안팎의 환경에서 이는 상당히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같군요.(서태지가 랩으로 데뷔했
을 때 락계의 그 뜨악한 반응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에 더해서 신대철씨에게 더 위험요소로 감지되었
던 게 하나 더 있죠.

"저는 서태지 생일 선물로 레드 제플린 CD를 사준 적도 있으니까. 하하. 전혀 딴판이죠.
이건 록음악의 뿌리를 가르쳐주고자 여러가지 도움을 줬었지만 그게 잘 안 먹히더라구요.
처음 음악을 들은게 머틀리 크루, 스트라이퍼, 비스티 보이스에서 시작했으니 그 이전의
고전이라 할 만한 록음악을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그것을 통해 시각의 확장을 주려고 했
었지만 그 친구가 갖고 있는 감각적인 면과 더불어 그 당시에 유행하던 음악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클래식까지 이해한다면 훌륭한 뮤지션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서태지는 그런 노력은 없었어요. 고전을 듣는다는 건 고역이라 생각했고 새로나온
사조를 받아들이고 만응하는 데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어요. 그런 점이 결국 나중에 신
세대적 감수성과 맞아서 그들을 대표하는 목소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서태지한테 레드제플린 시디를 선물해줬다는 게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레드제플린은 다 알
다시피 락계의 수학정석, 성문기본이나 마찬가집니다;;; 락의 고전 중 고전, 모든 이들이 기본으로 시작하
는 거죠. 아무리 서태지가 트렌드에만 관심있고 기본적인 것은 안 듣는다 느꼈어도 태지가 레드제플린을
안 들었을 리는 없어요. 아마도 태지에게 그것을 선물한 의도는 락의 정통, 기본부터 차근차근 듣고 정통으
로 커가라는 의미였을 겁니다. 태지가 그 때 관심깊게 듣던 머틀리크루나 비스티 보이스는 락이 정통에서
여러 유파로 갈라지면서 나온 80년대 최신 조류 중 제일 감각적인 종류였으니 말이죠.

그러나 태지는 암만봐도 무협지로 치면 사파끼가 넘쳐납니다-_-;;;(여기서 무협지 엄청 들여판 과거가 나
옵니다;;; 무협지 모르는 분은 그냥 그러려니 넘기세요) 어느 정식 유파에 입문하여 1단계, 2단계, 3단계...
이런 식으로 초식을 차근차근 배워나가서 수십년만에 그 유파의 장문인이 되는 것은 암만 봐도 서태지의
체질이 아니죠. 1단계 수련에 1년, 2단계에는 그 갑절, 3단계에는 또 갑절 이렇게 평생 익히기엔 세상에 하
고 싶은 음악이 많았는데 말이죠. 태지에게는 정파 검법, 사파 창술, 독학 내공 이것저것 아무 상관없이 자
기 나름대로 섞어서 자기만 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만들면 그만인 거죠.

"저는 서태지가 갖고 있는 감각적인 면이나 스타성은 높이 사요. 단지 뿌리가 든든했더라면 지금보
다 자기의 스타일을 정립하고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거
죠"

신대철씨의 요 멘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태지의 이 미묘한 '경박함'은 그때도, 그리고 지금에도 그에겐
절대 이해가 되지 않는 요소일 겁니다. 사실 한국 음악역사상 이 둘만큼 마인드가 극과 극인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신대철씨는 성기완씨의 말처럼 '한국 록의 불운한 장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죠. 뼛
속까지 정통이고, 록으로 먹고 살 수 없을 만큼 척박한 환경이라 더 끝에서 끝까지 매진하는. 그래서 새파
란 나이의 서태지가 창작의 고통을 말하며 은퇴한 걸 더 용납하기 힘들었을 겁니다;(96년 시나위 5집의 히
트송-_- '은퇴선언'이 서태지를 겨냥한 것이라고 한참 말이 돌자 '은퇴를 쉽게 생각하는 가요계의 풍토에
대한 것'이라고 해명했었죠. 주 타겟이 서태지인 것은 확연하지만-_- 저 해명도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신대
철씨한테는 정말 이가 갈리게 가볍고 가벼운 일이죠;;;)

아, 말이 샜군요... 시나위는 90년 초에 결국 4집을 냈습니다.

수록곡
1) 1990(INSTRUMENTAL) 2) SET MY FIRE
3) FAREWELL TO LOVE 4) 겨울비
5) IN YOUR BROWN EYES 6) 내마음속의 여행
7) PLAY THAT WILD ROCK N'ROLL 8) METALIZER
9) BOLERO 10) 황무지

(저도 집에 한 장 있습니다^^)

여기서 FAREWELL TO LOVE는 서태지 1집 불멸의 히트곡; 환상속의 그대 코러스로 삽입되었고, 겨울
비는 김종서 솔로 2집 타이틀곡으로 엄청나게 히트하는 뛰어난 재활용의 사례들이 됩니다;;;

이 때 베이시스트 서태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기도 하고, 의외로 없기도 합니다. 연주 자체는 아주 정확
하고 절제되어 있습니다. 곡 안에서 드럼과 더불어 든든하게 받쳐주는 베이스라인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몇 곡에서는 상당한 테크닉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다만 이후의 서태지를 알고 그 치기어린 현란한 기교와
센스를 기대하고 듣는 사람은 실망하기도 합니다. 실은 연주가로서 서태지는 그 이후로도 상당히 건조하
고 냉정한 연주스타일입니다만^^;;;; 시나위 안에서 자기 색깔이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평하더
군요. 그의 나이나 위치 등을 생각하면 정확하게 자기 파트 안에서의 일부 편곡 외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
은 것도 이해가 갑니다.(시나위 시절에도 태지가자기 곡을 몇번 가지고 왔었지만 그룹 성격에 맞지 않아 수
록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한데 라이브 연주는 어땠을지 상당히 궁금합니다. 무대 매너를 봐서도 상당히
달라질 여지가 있었들 듯 하거든요(그래봤자 넌 초등학생이었는데 잘도 봤겠다=_=)

아, 무대 매너하니 먼저 떠오르는 건 서태지씨의 허리까지 치렁치렁하게 내려오는 노랗게 염색한 긴 머리,
빨간 장화-_- 쫄바지, 화장 등등이죠? 염색은 그 당시 락계에서 상당히 예외적이었고; 그 외 패션들 역시
시나위 팬들조차 가끔씩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거기다 당시 동영상을 보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무대 위에서 화려한 액션 역시 상당히 튀었습니다. 실력이 뒷받침되었기에 망정이지 상당히 보수적
인 락팬들 사이에선 뒷말이 있을 정도;;; 되려 신대철씨를 비롯한 락계에선 '나도 하고 싶은데 뭘'하고 관대
한 태도였다고 하죠.(그러니까 기본적 마인드 차이가 큰 겁니다;;; 아직까지도...중얼중얼)

4집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일본 진출까지 모색하던 무렵 시나위는 의외로 빨리 해체되었습니다. 김종서
씨는 좀 편한 스타일의 록을 주장했고, 신대철씨는 정통 록을 고집했어요. 그 사이에서 서태지는 자기 돌연
변이 스타일을 다듬고 있었을 겁니다-_-;;; 그 와중에 사기공연사고라는 어이없는 일까지 터지니 슬럼프 끝
에 해체에 이르게 된 거죠. 이제 서태지는 시나위라는 우산밑에서 신대철씨로 대표되는 록의 수업을 접고
완전 자기 세계로 들어가게 된 거죠.

자, 여기서부터 상당 부분 진전되어 오던 서태지의 독학은 이제 100%독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 수업 아닌 수업이 좀 더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좀 더 극단적으
로.... 서태지가 그 정통 록 정파에서 정파 수제자로 컸다면 지금의 사파 '괴물' 서태지는 온데간데 없고 정
파의 종사가 되어 있을까요?

...서태지씨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몇십번 되돌아가도 지금처럼 살고 있었겠죠 뭐-_- 그래도 서태지는 신
대철씨에게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기꺼이 말하고 있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시나위 시절을 '어머니같
았다'라고 회상하기도 합니다. 어쩌면...죽기 전에 이 두 사람의 '시대와의 화해'가 이루어질수 있을지도(
사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락 스피릿과 시대의 문제인듯), 어쩌면 말이죠.

자, 어쨌든 정파에서 길러진 사파 서태지는 정파에서 파문아닌 파문(그 파문, 요즘까지 아주 징하게 오래
갑니다 끌끌)을 당하고 혼자 수련에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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