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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리뷰) 태지 보이가 확신을 말하는 또다른 방법
pigging  추천수:26  조회수 : 1503 
  신곡리뷰) 태지 보이가 확신을 말하는 또다른 방법   


※주의: 1.스크롤의 압박
2. 읽고 나한테 뭐라뭐라 하지 마시오 ;;;;;
(뒤에서 씹기 뭐 이런거 완전 ㅡㅡ; 올 맛 안나게 해버림)


서태지가 7집을 마무리 하는 시점에 신곡을 하나 내놓았다. 제목도 안 지어놓고 간 3분 12초짜리이다.


곡 하나 들어보기 위한 절차는 참 번거롭기는 했지만(솔직히 좀 짜증이^^;;) 그래도 들어보고 싶도록 느끼게 하는 면이 아직 남아있는 것이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곡에 대해 무엇이든 느끼고 생각한 것을 뱉어내고 싶어지게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곡 자체의 내용이라는 것도.


이 곡이 흥미로운 것은 7집부터 전면으로 내세운 '감성'이라는 것을 유도하기위한 방법이 상당히 실험적이라고 할 만하면서 정작 방법 자체는 7집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 곡은 우선 구조적인 면에서 상당히 재미있는 점이 많다.
요즘의 팝 트렌드인 곧바로 훅으로 찌르고 들어가기를 사용했다는 것과 절정(?)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의 그 구성진; 보컬같은 것은 요즘 포퓰러 락에서 가장 많이 흐르는 트렌드이다.


형식상으로 전혀 비슷하지도 않으면서 이곡에서 후바스 탱크나 유즈트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하는 경우는 아마도브릿지에서 클라이막스로 이어지는 부분의 멜로디가 팝적인데다 한박자씩 끌리는 부분이 한국어 보다는 영어 어감에 더 적합한 리듬형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7집부터 이어지는 자잘하고 현란한 기타편곡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제이락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처음 이곡을 들었을 때 느낀 것은 '끊어진다'는 것과 '잘 만든 곡인지 못만든 곡인지 알기 어렵겠다'라는 것이다.



무슨 곡을 들을 때 '잘만들었나 못만들었나'를 먼저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고^^;(있나?) 그런데 뜬금없이 그런 의문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그 형식이 파괴적이고 낯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나 소설도 그렇지만 음악에도 엄연한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어왔는데 호흡이 긴 다른 장르에 비해서 음악이라는 것, 그러니까 대중음악과 같은 경우는 유난히 호흡이 짧아 이 기승전결을 끌어내는 양식이 다른 장르보다도 더 공식화 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신선함을 파생시키는 능력이 하나의 지적인 테크닉 같이 인식된 것은 노래만의 특별한 점이다.



그러니까, 그건 마치 제한된 조건의 게임에서 누가 가장 잘 하는가와 같은 성질이 유난히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감정의 고조를 노리는 기승전결이라는 것은 보통 생각하는 음악성에 대한 뭔가 spiritual한 인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더 테크닉적이고 그리고 공식적이다. 말하자면 잘된 것과 못된 것의 분간이 생각보다는 더 엄연하고 밝혀내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에는 형식파괴적인 면들이 대중음악 트렌드로까지 번져있지 않은가.
아직은 블랙뮤직쪽에서 주로 통용되는 듯 보이는 이 트렌드- 곡 하나에 걸쳐 하나의 기승전결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훅을 내세우면서 고조감을 계속 유지시키는, 다른 것을 삭제시키고 알맹이를 죽 나열한 것같은 방식- 이 긴 시간을 두고 계속 인기를 유지한다면 그때는 트렌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익숙한 패턴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좁고 작은 하나의 유형에 가까우며 거기서 파생되는 돌연변이들까지 평가할만한 어떤 기준들같은 것 역시 마련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서태지의 이번 신곡은 그런 트렌드를 온전하게 삽입하지는 않았다.
장르가 다른 탓도 있기는 하겠지만 되도록 사운드를 삭감해서 줄기를 굵고 진하게 노출시키는, 그래서 적극적으로 훅을 각인시키려는 어떻게 말하자면 상당히 경제적인 트렌드의 특성과는 다르게, 엄청난 양의 사운드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과잉적이라는 면에서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말하자면 전통적인 면에서 보든, 새로운 트랜드에서 보든지 간에 이 신곡에서의 후렴구의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단지 이 형식적인 면에서 비교할 수 있는 것은 하나의 절정을 위해서 나머지 칼라를 죽이고 대신 하나만은 안정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는 전통적 방식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진한' 부분만을 나열한다는 것과, 이음새의 매끄러움 보다는 하나라도 더 돌출시키기 위해 주력한다는 것이 비슷하다.



그리고 서태지 개인의 음악사를 생각해 보자면, 곡을 통해 노출시키는 감성이 비틀림과 파열에서 파생되는 긴장이라는 면에 있어서 그 어느때보다도 아이들 시절부터 내려오던 감성의 본질과 닮아있다는게 나의 감상이다.



서태지가 네러티브를 전개하는 방식


인위적으로 이전과는 다른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이던 (그러면서도 이분적인 목적들이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듯했던) 7집에서 서태지가 이른바 '감성'이라는 것을 모토로 세우기 위해 사용한 툴(tool)은 하나의 서사적인 구성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회상이 앨범의 모토임을 밝히고 이어지는 하나의 곡처럼 만들었다는 소감, 이어지는 뮤직비디오 마저도 유난히 스토리를 강조하며 연결을 시도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 7집에서 네러티브는 매우 중요했으며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구체적이기 마저 했다.


이 앨범에 대해서 '청자에게 공감의 여유를 주기보다는 듣는 방향을 지시한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은 거의 자폐적이라고 할만큼 개인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음악 내에서 또한 대중성을 고려한 분열적인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야기의 음악적 묘사가 지나치게 상세하며 전 곡을 붙여 놓은 물리적인 강제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문제는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서태지가 의도하는 그 네러티브의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그 내용을 모를 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그 문제를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예는 뮤직비디오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7집 활동 동안 상당한 공을 들였다는 뮤직비디오의 문제점은 정말 놀랄만큼이나 7집 자체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가장 대중적인 형태의 '스토리 뮤비'를 도입하면서 뮤비를 이어놓았다는 점, 과도한 소스를 삽입했다는 점, 구체적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용전달에 실패했다는 점이 그렇다.



7집의 뮤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은 '줄거리의 이해'이다. 그런데 서태지에 대한 사전적 지식도, 접촉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7집이 '왜 이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힌트들을 음악에서는 찾을 수가 없듯이,



뮤직비디오 역시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경우 이어진 다른 뮤비까지 이해할 수 없는데 정작 뮤비 자체가 이야기 적인 면에서 아무런 제대로 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가장 큰 문제였다.



사실 7집에서도 그렇듯 그 문제라는 것이 뮤비 자체가 그 안에 스토리, 즉 '정보'를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지 못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은 짧은 뮤비의 시간 안에 넣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체적이고 긴 스토리를 풀어 놓고자 하며, 이야기 하나만을 중점적으로 전달하기에도 모자란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목적과 많은 스타일, 많은 '심볼'을 차용했다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달까.



특히 인상적인 것은 뮤비가 가진 dense information이 가진 문제점이 7집의 음악에서 느낀 문제점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Dense Information과 logic의 부재



Dense information은 digital cinema를 이야기하면서 Manovich가 사용한 표현으로, 하나의 특별한 형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대중적인 예를 들자면 MTV의 화면을 들 수 있다.



휙휙 지나가는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게 될 때 그 안에 굉장히 많은 정보와 상징이 들어있는 경우가 그것인데 그것을 보는 사람은 결코 그 내용 전부를 소화해 낼 수 없지만 어떤 인상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과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방식이었고, 그 후로는 주로 짧은 시간 안에 강력한 시각적 충격을 주기 위한 광고에 주로 사용되어 온 방식이다. (어쩌면 이런 모호한 심볼 사용을 빈번히 해왔던 박명천 감독이 뮤비를 찍었다는 것에서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방식은 짧은 시간 안에 승부를 내며 전달해야 할 정보가 상당히 단촐한 (주로 회사 로고나 상품을 짧은 시간 안에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방식이 그것으로 시각 효과와 함께 무의식 적으로 '각인'된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경우에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달해야할 "구체적이고도 복잡한" 줄거리가 있는 약 5분짜리 뮤비에 이와 같은 방식을 차용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운(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끔찍한) 선택이었다. 어디선가 본 '로보트' 뮤비의 캡쳐를 본 적이 있는데 스팟으로 팍 터지면서 지나가는 일초도 안되는 순간 안에 여러가지 내용물 (typography나 아니면 그래픽 심볼이거나)이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숨겨 놓은 힌트'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부족한 내용을 찾아보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뮤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은 방 안에 숨겨놓은 힌트 하나 찾아내는 것은 그럴싸한 방식이겠지만 위의 경우는 해변가 모래장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는 것과 같은 형국이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key로 한 뮤비라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 심볼의 사용은 자제하고 그 스토리 내용을 부각시켜야 했었다.



그 스토리 자체가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연결되는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착각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관점이기 때문이다. 문제(question)를 낸다고 그게 다 좋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문제가 되기 위한 조건은 최소한 문제를 풀 사람에게 자신이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인식시켜야 하며 무엇보다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모든 요소는 문제 안에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question의 조건



이렇게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정작 줄거리를 이성적으로 풀어내는데는 실패한 뮤비와 같이 7집 음반 내의 가장 치명적인 흠은 음악 내의 부족한 논리, 즉 logic이었다. 하나의 곡처럼 엮어 놓기에 곡들은 제각각 너무 많은 분절을 가지고 있으며 멜로디간의 격차는 적어서 붙여 놓을 수록 비슷비슷하고 산만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인 힌트가 음악 안에 부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의 logic이란 다름 아니라 음악을 설득력 있게 들리게 하는 모든 요소이다. 만약에 이 두곡이 하나의 곡이라고 주장하려면 음악적 요소 (구성, 박자, 리듬, 멜로디 무엇이라도 좋다)에서 하나의 곡처럼 들릴 수 있는 설득력을 얻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4가지 코드를 사용했으니까 하나의 곡과 같다'고 말하려면 음악을 물리적으로 붙여서 하나로 만들기 보다는 음악 안에 있는 그 네개의 코드를 누가 들어도 알 수 있도록 부각시켜야 한다.


'80년대적 감성'이라고 이야기 하려면 음악의 어느 구석에서 80년대 적인가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개인적 회상'이라고 하면 그 개인적 회상이 무엇인지 음악에서 느낄 수 있도록 가사를 부각시키거나 다른 음악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그렇지 않다면 멜로디 작곡력이 부족해서 전부 비슷하게 들리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비슷한 코드를 주로 사용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음악의 논리라는 것은 감성을 죽이고 이성적이 되라는 강요가 아니라 나(창작자)와 청자 사이의 정확한 의사 소통을 위한 최소한의 다리이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음악의 논리라는 것은 이성을 요구한다.



왜냐면 적어도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음악 안에서 누구든 찾을 수 있어야 하기에. 그러나 창작자 '자신만 아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심어 놓았는가와는 관계없이 그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다면 그것은 거의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과 같다. 마치 뮤비에서 계란도 나오고 꽃도 나오고 애니메이션도 나오고 글자도 나와도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면 전혀 소용없는 것과 같이. 흩어진 서말의 구슬을 하나로 꿰는 것은 객관적 논리, 이성이라는 실인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 그 개인의 음악 뒤에 있는 배경들에 대해서 관심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에게 전통적인 감성고조가 아니라 파괴적인 형식을 도입한 '감성코어'는 의도만큼 효과적이지가 못했다. 한 곡 안에서 계속해서 분절되고 변화하는 화려한, 그리고 조금 산만한 곡의 전개와 그에 비해 비교적 단순한 멜로디는 밋밋하고 몰입을 방해하는 것 같이 들렸다.



그것이 어째서인가, 음악을 말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기꺼이 파고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7집의 곡들은 예전보다는 편안하고 즐거운 음색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대중적이었지만)이미 수없는 담금질을 통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감성을 고조시키는 방식을 체득하고 있는 기존적인 기승전결에 비해서는 그다지 '감성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곡은 여러 면으로 경계에 서 있다. 7집이 놓여 있는 과거쪽으로는 '감성'이라는 요소와 비슷한 편곡방식을, 그리고 이 곡의 구성이 시사하는 방법론은 미래를 향해있다.



그리고 이 곡은 그 자체로도 성공과 실패 사이 경계의 부서질듯한 긴장을 마치 즐기는 듯,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확신을 말하는 또 다른 방법일까.



앞서 말했듯이 이 곡은 상당히 재미있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 이 곡을 들을 때의 인상은 '끊어지듯 하다'는 것이다. 자세히 곡을 살펴보면 눈에 보이는 형식상으로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구성이다.(물론 후렴구가 먼저 치고 들어 오는 것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흔한 형식이다.)



'watch out man 좀 침착해 내가 너의 네 곁에 있는데

뭘 겁내 날 좀 허락해 네 절망 끝엔 내가 서있을게'



라는 후렴구는 위협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기타와 드럼이 거의 박자맞추기 수순 정도로 쿵쿵거리자 마자 바로 시작된다. 그리고 한소절 안에 시작과 고조 폭발까지 끝내버리는 일절이 끝나면 다시 한번 반복되고 그 후에 일절과 같은 이절 반복, 브릿지, 간주,다시 후렴구로 이어지며 급하게 끝을 맺는다.



엄연히 전통적인 방식의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끊어지는 듯하게 들리는 것은 반복의 효과를 전부 거부하는 특이한 작법 때문이다.



보통은 후렴구가 세 네번 등장하게 될 때는 주로 훅으로 사용하기 위할 때가 많은데, verse를 잇고 익숙하게 만들며 때로는 절정부분에 차용해서 감정을 효과적으로 쌓아올리다 폭발시킬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아까 얘기한 요즘의 트렌드로는 이 후렴구가 핵심요소로 loop처럼 사용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데 이 곡에서 후렴구는 위에 열거된 방식 중 아무 것도 차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리에는 있지만 위에 설명된 실리를 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후렴구가 쓰이는 방식은 연결이 아니라 단절이다.



변화무쌍한 7집의 방식을 이어 받아서 이 곡 역시 거의 verse단위마다, 아니 한 소절 안에서마저 엇박자를 많이 사용하고 멜로디 사이의 격차도 커서 순간순간 예측하지 못한 멜로디가 전개되는 식이다. 훅 또한 후렴구보다는 verse자체가 더 강해 실제 이 곡을 처음 공연에서 접한 사람들이 띄엄띄엄 기억한 멜로디는 총 세번이나 반복되는 후렴구가 아니라 verse 끝마디인 '네가 외롭다는 걸 알아/네가 두렵다는 걸 알아'였다.



두들기며 쳐들어 오다시피 하는 후렴구, 이어지는 일 이절, 브릿지, 절정구는 전부 따로 때어 놓고 보았을 때 서로 다른 곡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른 감성들과 그리고 앞으로 설명하게 되겠지만 상당히 '진한'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후렴구가 이어주기 보다는 적당히 잘라 이어가면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계속 긴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verse가 가진 각자의 매력을 계속 연발하는 식으로 감성을 자극해 나가는 식인 것이다.



이것은 요즘의 팝 트렌드가 사용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감성을 자극해내는 면에서는 비슷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어두운 부분에서 밝은 부분으로 부드럽게 이어어주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계속 자극적인 보색을 보기 좋게 잘라 붙여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후렴구는 각자 다른 색을 이어주기는 하지만 그 역시 경계가 확실한 다른 조각이다.



실례로 후렴구가 각각 들어가고 나오는 부분의 편곡은, 구조상으로 거의 똑같은 일절과 이절을 이을 때마저 틀리다. 첫번째 후렴구가 일절로 넘어갈 때는 끝마디를 길게 빼고 fade out시키면서 비교적 자연스레 일절과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일절의 여운을 끊고 들어오는 후렴구가 다음 절로 들어가는 방식은 맨 마지막에 끝맺은 할 때의 공격적인 리프로 긴장을 만들다가 이절이 끼어들면서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후렴이 처음부터 이절 처음까지 두 번 사용되는 동안 곡 구조상의 소 폭발은 세번이나 일어나고 이절이 시작될 때는 '이어지는' 이절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하는' 이절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함을 넘어서 신선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니라 멜로디 자체의 힘이다.7집에서 시도한 것처럼 '이어지는 구체적인' 무엇이 아니라 반대로 탁탁 끊어내는 방식의 작법이 분절된 멜로디가 가진 특유의 매력을 죽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약 그 긴장을 이겨낼 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멜로디가 없다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앞서 나는 이 verse들이 상당히 '진하다'고 말했는데, 스치듯 빠르게 이어지는 이 한 소절 안에 시작부터 감정의 증폭, 폭발까지 하나의 완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의 보석같과 같으며 곡의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인데,



'내 눈에 비친 모든 색깔들이 예전에 느꼈던 것들과는 달랐지

왜 이리 틀리지 너는 또 다시 숨 쉴 곳을 찾겠지만

넌 잠시라도 꿈을 꾼 건 착각은 아닐 거야

네가 외롭다는 걸 알아' 라는 일절을 보자면,



'내눈에'..하고 빠른 속도로 이어지는 보컬이 '느꼈던 것들과는 달랐지'에서 마치 경쾌한 발재간처럼 한 번 꺾어지고 다시 낮고 빠르게 이어지다가 한 템포씩 끌면서 '착각은 아닐 거야'에서 급격한 감정의 고조를, '네가 외롭다는 걸 알아'에서 순식간에 폭발, 이어지는 샤우팅으로 산화하는 부분은 놀라울 만큼 감성적이다.



이 빠르고 재치있는 한 소절만으로 하나의 또렷한 호소, '난 네가 외롭다는 걸 알아'라는 말은 하나의 완결된 형태로 다가온다.



그래서 일절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이미 후렴이 터트려야 할 감정의 여분은 이미 남아있지 않다. 그러면 후렴구는 여운을 짧게 치고 공격적인 리프를 반복하면서 일종의 '재시동'을 걸고 2절로 넘어가 또다시 '난 네가 두렵다는 걸 알아'라는 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절은 일절과 구성상으로 완벽히 같지만 브릿지로 이어지면서 일절이 긴장으로 끊어졌다면 이절은 아련한 브릿지로 급격히 반전을 맞이한다.



'너의 밤에 날 허락해줘



네가 만약 너의 긴 어둠 속에 이 밤을 지배할 수가 있다면

널 불구로 만들고 말 거야 '



어쿠스틱한 기타와 함께 들어오는 브릿지와 클라이막스는 위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단절과 같이 딱히 이어지기 보다는 적절히 한자리에 붙여 놓은 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그 나름으로 강한 인상과 함께 미묘한 박자 끌기로 인해서 더 팝적인 느낌을 준다.



계속 이어지고 있다가 고조된 감성적 절정이라기 보다는 훅이 강한 멜로디와 많은 다른 팝송의 절정부분을 듣는 듯한 하나의 연상을 끌어다 붙인 느낌이라고 할까. 이런 구성에서 어느 면에서는 어색할 수 있는 데도 어색함을 느끼기 보다는 흐름을 탈 수 있는 것은



'너의 밤에 날 허락해줘'의 멜로디가 상당히 익숙하게 귀에 감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단절이 하나의 패턴으로, 일종의 형식으로써의 규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질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 더 큰 이유이다.



또한 그 뿐만이 아니라 '네가 만약 너의 긴 어둠 속에서 이 밤을 지배할 수가 있다면'에서의 어떤 템포가 끌리는 패턴의 유형이 마치 멜로디의 화음처럼 '날 지워가고만 있어 나는 네가 두렵다는 것을 알아'라는 2절과 일종의 에코효과를 낳으면서 미묘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절정 부분에서의 서태지의 드물게 죽죽 직선적으로 뻗는 '열창'은 어딘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향수를 일으켜( 일집의 '내 모든 것'이나 지금 들으면 무척 민망한^^ '나를 용서해 주오'와 어딘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어색하면서도 풋풋한 무엇을 떠올리게 해준다.



이렇게 복잡스런 사운드의 락을 가지고 완성한 하나의 '감성의 몽타쥬'는 분절적이고, 서로 마모되며 파열하는 '부서짐' 그것의 처절함으로 세차게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서 있다. 그 감성의 본체는 아이러니 하게도 다른 것이 아니라 비틀어진 긴장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는 칼같은 이성, logic이다.



이 곡으로 서태지는 자신의 감성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을 체득한 듯하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기타의 뼈대만으로도 충분히 날카롭게 찌르던 필승의 훅을 그리워 해야 했지만 지금은 옛날의 그들과 같은 피를 나눈 형제같은 이 곡을 보면서 이미 멀리 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언제나 조마조마 이어지던 긴장의 파열, 그 마모의 끝부분에 비어져 나오는 어떤 '감성'은 너무 버겁고

확신 없는 것이어서 그런 순수함을 계속 바라는 것은 상당히 이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우리 태지 '보이'가 다 자라 '뭘 겁내 날 좀 허락해 네 절망 끝에 내가 서 있을께' 하고 두들겨 대도



'난 네가 두렵다는 것을 알아'라는 것이 확신을 말하는 자의 분열적인 자기고백인지도 모르니까

   ▲ Re: 신곡리뷰) 태지 보이가 확신을 말하는 또다른 방
   ▼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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